2024년, 나의 첫 학위 수여식
지나보면 정말 감사했던 지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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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무언가가 끝난다는 것은 또다른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더욱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졸업을 맞이합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새로움이 다섯 번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새롭네요. 제가 여섯 번째 졸업을 하는 날(그리고 그것이 진짜 마지막 졸업일 것 같은데요) 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내가 누구이기에
지난 2024년 2월 초, 학과 조교님이 제 앞으로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바로 제가 단과대학 (공과대학) 수석으로 결정되어 2월 26일 열리는 학위 수여식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선정 과정도 극적이었습니다. 다른 공대 학생과 동률이었는데, 총 수강학점도 같았고, 둘 다 대학원 진학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음 기준인 ‘전공 학점’을 제가 더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제가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일반 선택 과목을 전공으로 채운 게 이런 결과를 가져왔네요… ㄷㄷ)
입학할 때 예비로 들어왔고, 대학 다니며 특별한 상을 타본 경험도 없었는데, 이번 학기 소프트웨어공학과 졸업생 40명 중 ‘학급 1등’을 넘어서 공과대학 졸업생 592명 중 ‘전교 1등’이 되었다는 것이 얼떨떨했습니다. 저학년 때부터 열심히 수업을 듣다 보니 생각보다(?) 학점을 잘 받게 되어 학과 수석은 기대할 수 있었지만 단과대학 규모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욱 뜻깊었습니다.
사실 제가 바로 취업했다면, 이 수석이라는 타이틀은 취업 시장에서 성실성의 지표로서 크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학점을 덜 신경쓰고 다른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을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저는 우선 연구자의 삶을 도전하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그래서 학부생의 커리어는 잠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제가 무엇이기에 이런 결과를 맞이하고, 이런 자리에서 공부하고, 이런 기회를 받고 있을까요. 그것이 제가 지금도, 앞으로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바뀐 학위복
수십 년간 쓰이던 검은 색 학위복이 아닌, 교색을 활용하여 새로 디자인한 학위복을 이번 학위수여식부터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새로운 학위복을 입어보는 첫 세대가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학위 수여식]
2024년 2월 26일, 학위수여식 당일이 밝았습니다. 다른 동기들은 그냥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 찍고 말면 되는데, 저는 민주마루(대강당)에서 공식 행사를 진행하고, 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처럼(?) 8시까지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8시 반에 학과실에 방문하여 학위복을 입었습니다. 조금 이따가 캡스톤 동료이자 연구실 동료 후배도 저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학과 차석!) 학위복을 가지러 왔습니다.
그렇게 9시 반쯤 민주마루에 도착, 행사 순서를 확인하고 간단한 예행연습을 마쳤습니다. 연습이랄 것도 없긴 했지만요…
10시, 학위수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상이 있긴 하지만, 저는 각 단과대학별 최우수상 부문에서 3번째(단과대학 가나다순)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처음 뵙는 공과대학장님 앞에 서게 되었고, 격려와 함께 부상(주석 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대표 학부 졸업생들이 상을 다 받은 후, 다음 순서는 석사 및 박사 학위수여였습니다. 저와 같이 받은 다른 학부생들은 이제 본인의 볼일을 보러 나갔지만, 저는 끝까지 앉아 있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미리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이날 박사학위를 받는 인원은 152명이었습니다. 사실상 대학 학위수여식에서의 주인공은 역시 박사님들일 것입니다. 학사나 석사는 그냥 옆에서 자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죠.
저는 과연 나중에 당당하게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요.
행사가 끝나고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제 옆 연구실에 소속된 친한(?) 누나와도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와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여러가지로 소통하며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나중에 공동 연구도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분은 이번 졸업으로 학사 학위가 2개(!)인데, 그만큼 지금 분야에 대한 열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저도 물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에 흥미가 있긴 하지만, 약간 그런 거 있잖아요. 하라는 거 하면 재미는 있는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답변하기 어려운 거. 그런 상태입니다. 저는 아직 저의 연구 분야를 아직까지 확실하게 이야기하기 좀 어려운 단계인 것 같습니다. (물론 프로필에 쓰여 있긴 하지만, 그걸 앞으로 계속 밀고 나갈 것이냐는 다른 이야기란 뜻이죠.)
나의 길
제가 학부연구생으로 들어가기 직전, 2021년 7월쯤에 교수님께 그런 고민을 실제로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연구 주제를 못 찾겠습니다”
솔직히 학부 2학년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모두가 웃겠지만, 저에게는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연구실에 계속 있을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못하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중간에 그만두게 된다면 그것은 인생의 커리어에서 엄청나게 큰 문제이고, 이를 예방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이렇게 답하셨죠.
“연구실에 계속 있다 보면 알아서 찾게 된다”
벌써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게 맞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어쩌다 보니 누군가의 연구를 받아서 그 연구를 이어 진행할 때도 있고,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맞춰서 진행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국내 대학에서의 연구는 프로젝트 결과물이 걸려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뭔가, 내가 흥미가 있어서 연구를 시작하는 사례는 돌아보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아이디어가 ‘타당성’이나 ‘학술적 가치’의 잣대로 비추었을 때 별로 의미가 없어 거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연구 주제나 연구 아이디어 역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거라고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연구’와 ‘살기 위해서 하는 연구’는 약간 결이 다른 만큼, 앞으로 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미래는]
지금까지 저의 삶은 은혜와 감사로 가득 찼던 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난 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생활을 돌아보면 물론 힘들고 안타까운 시기도 있었지만 그걸 이겨낼 수 있도록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의 인생도 제가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도받아 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연구하면서 더욱 더 느낍니다.
인생의 중반부의 시작 지점에 서 있는 지금, 앞으로의 인생을 기대하고, 제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을 기대하고, 저를 통해 일어날 모든 일과 결과를 기대합니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고, 늘 감사하는 인생이길 바랍니다.
인생의 끝에 서는 날, 후회 없고 행복하길 소망합니다. 저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요.